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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 해석 리뷰, 빌런 탄생 가족의 붕괴 사회적 약자 분노

by 트랜드 조로 2025. 5. 2.

영화 조커는 한 인간이 반복되는 상처와 소외 속에서 어떻게 괴물로 변해가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가는 작품입니다. 정신질환을 앓는 주인공 아서 플렉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입니다. 그는 어머니의 학대, 거짓된 가족 서사, 복지의 단절, 꿈의 좌절, 그리고 미디어의 조롱과 폭력까지, 삶 전체가 고통의 연속인 존재입니다.  영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조커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가 어떻게 빌런으로 변모하는가를 디테일하게 묘사합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언제든 조커처럼 심리적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조커 – 가족의 붕괴 괴물의 탄생 사회적 약자 분노
영화 조커 – 가족의 붕괴 괴물의 탄생 사회적 약자 분노

 

 

가족의 붕괴와 정체성의 파괴

가족은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인 소속감의 근원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아서는 그런 가족마저 배신의 상징으로 마주합니다. 어머니는 아서를 입양했음에도 친아들처럼 기만하고, 학대하며, 그 정체성의 기반을 허물어버립니다. 자신이 토마스 웨인의 사생아라는 믿음은 사실이 아니었고, 이는 아서에게 이중적인 상처가 됩니다. 이처럼 가족의 붕괴는 단순히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현실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상징합니다. 아서는 그 속에서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결국 ‘아서’라는 이름이 아닌 ‘조커’라는 가면을 쓰게 됩니다. 조커는 곧 상처의 집합체이며, 사회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정체성입니다.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정서적 불안 증상이 나타납니다.  정신이 분열되는 것은 이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심리적 상처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친한관계일수록 그 상처가 더 심하죠. 왜 그럴까요?  그것은 세상은 아무도 몰라도 내 가족만큼은 나를 이해하고 지켜줄것이라 믿었는데, 그 믿음이 산산이 조각났을 때 느끼는 상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괴로운 일이죠. 그렇지만 상처를 준 가해자는 전혀 그 사실을 모르죠. 타인에 대한 배려, 공감 능력이 있었다면, 누군가의 권리를 뺏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을 했을까요. 그런 자들에게는 타인의 선택을 뺏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죠. 특이 이런 이들은 자기애성성격장애 증상이 있어서 세상의 중심은 자기위주로 돌아가야 된다고 믿죠.  어린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받들어 모시게되면 자신의 선택이 우월하다고 믿게되는것이죠.  주변 사람들은 점점 더 괴롭게 되는 것이 자기애성성격장애의 특성입니다.

 

사회적 약자가 괴물로 변하는 구조

아서를 둘러싼 환경은 지속적인 폭력과 무관심입니다. 복지 시스템은 예산 부족으로 상담과 약물 치료를 중단하고, 그는 병이 깊어짐에도 도움받지 못합니다. 희망을 걸었던 코미디언의 꿈도 방송에서 조롱당하고, 사회는 그를 철저히 외면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을 괴롭힌 자들을 하나씩 공격하기 시작하고, 그 순간부터 조커는 희생자가 아닌 ‘상징’이 됩니다. 조커라는 존재는 사회적 약자의 분노가 응집된 하나의 결과물이며, 이 영화는 그것을 통해 “누구나 그런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던집니다. 영화 조커는 단지 한 인물의 추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디까지 타인의 고통을 방치하고 있는지를 고발합니다. 아서가 괴물로 변한 것은 그의 성격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조적 무관심, 복지의 붕괴,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공동체는 함께 살아가는 약속 위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회가 약자를 끊임없이 밀어내고 방관할 때, 그 약자는 ‘위협’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조커는 그 위협의 얼굴이며,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또 다른 자화상입니다.  한국사회의 공동체가 미약하고, 금방이라도 무서질 것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기적인 가족문화로 똘똘 뭉쳐서 나하나만, 우리가족만 잘 살면된다는 각자도생 문화가 가득차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사회는 너무나 빨리 변화하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몰락합니다. 그렇지만 국가는 나몰라라하고, 제도와 시스템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너희가 게을러서 그래, 너희가 무능력해서 그렇다고 사회적 약자를 폄하하죠.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는 정말 게을라고 무능력할까요.  제도권에 있다고 그 틀에서 떨어져나가면 한없이 떨어지는게 한국사회의 시스템입니다. 그누구도 예외라고 할수없죠. 다들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을려고 용을 쓰는것이죠.

 

마무리 정리

영화 조커는 궁극적으로 질문합니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 대답이 없다면, 언제든 두 번째, 세 번째 조커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영화 속 고담시처럼 현실의 어느 거리, 어느 골목에서 말입니다. 조커의 등장은 한 개인의 타락이 아닌, 사회적 책임의 실패입니다. 그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결과이며, 외면의 대가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로 읽혀야 합니다.  그렇다고 조커가 미화될수는 없지만, 분명 수 많은 루저, 아류 조커들이 조카의 존재를 기다리고 부각시키려 합니다.  사회적약자들은 희망이 없기 때문에 판을 뒤집어 엎으려 합니다. 시스템이 불안정해질 수있는 잠재적 요소입니다. 따라서 건강하고 합리적인 사회공동체를 생각한다면, 성숙한 성장을 위해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배려를 꼭 해야합니다. 괴물은 갑자기 태어나지 않습니다. 괴물은 고통과 방치 속에서 자라납니다. 조커는 우리가 만든 거울이며, 지금 우리가 바꿔야 할 사회의 경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