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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장하 진주 형평운동, 형평사 신분해방운동 1923년 진주 한국최초 인권운동

by 트랜드 조로 2025. 5. 7.

1923년 진주에서 시작된 형평운동은 단지 백정 해방운동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신분을 넘어 모든 차별을 거부하는 ‘한국 최초의 인권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신을 오늘날까지 이어온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진주의 ‘어른’ 김장하 선생입니다.

 

 

어른 김장하 진주 형평운동, 형평사 신분해방운동 1923년 진주 한국최초 인권운동
어른 김장하 진주 형평운동, 형평사 신분해방운동 1923년 진주 한국최초 인권운동

 

 

형평운동은 왜 시작되었을까?

형평운동의 뿌리는 조선 말기, 법적으로 해방된 백정들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차별받던 현실에 있습니다. 자녀의 학교 입학 거부, 공공장소 출입 제한, 직업상의 차별은 일상이었습니다. 법은 달라졌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죠.  1923년 4월 24일, 진주에서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백정 출신과 양반 지식인이 함께 모였습니다. 이들이 만든 단체가 ‘형평사’입니다. 형평사 선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라.” 단순한 해방을 넘어서, 모든 인간이 평등해야 한다는 외침이었습니다.  형평운동은 단지 백정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계급 철폐, 모욕적 호칭 반대, 교육 기회 보장 등 모든 차별을 거부했습니다. 운동의 주축이 백정이었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입니다. 피지배 계층이 스스로 일어나 사회 정의를 외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평운동은 이후 전국으로 확산되며, 여성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과도 접점을 맺게 됩니다. ‘저울처럼 평등한 사회’는 지금도 유효한 화두입니다. 우리가 오늘 다시 형평운동을 되새기는 이유입니다.

 

형평운동이 잊히려던 시기, 그것을 다시 꺼내어 세상에 알린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남성당한약방의 김장하 선생입니다. 그는 평생 자가용 없이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수익의 대부분을 지역과 학생, 언론과 인권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 진주에서 형평운동기념사업회를 설립했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단지 기념비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형평운동의 대표 인물 강상호 선생의 무연고 묘지를 찾아 직접 비석을 세우고, 그의 뜻을 되살렸습니다. 그는 인권과 평등의 가치를, 조용히 그러나 뚝심 있게 이어간 것입니다.

 

“돈은 똥과 같아서, 쌓아두면 썩지만 흩뿌리면 꽃이 핀다”

김장하 선생의 명언 중 하나입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번 돈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명신고등학교를 직접 설립하고, 이를 국가에 헌납했으며, 1,000명이 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그의 후원을 받은 문화·예술·언론·인권단체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놀라운 점은 그가 이를 철저히 ‘조용히’ 했다는 것입니다. 언론 인터뷰도 사양하고, 기부 사실도 알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진짜 ‘어른’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을까요?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돈과 배경, 성별, 외모, 나이, 지역에 따라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존재합니다. 그럴수록 형평운동의 가치는 더 중요해집니다. ‘차별 없는 사회’라는 이상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목표이니까요.  김장하 선생은 그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형평운동이 남긴 철학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2023년은 형평운동 100주년이었습니다. 진주에서는 다양한 기념행사와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아직 전국적 관심은 부족합니다. 형평운동은 단지 진주의 지역운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인권운동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김장하 선생의 생애와 정신이 다시 조명받고 있는 지금, 우리는 형평운동을 단지 역사적 사건으로 박제할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철학으로 되살려야 합니다.

 

마무리 정리

형평운동은 백정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김장하 선생의 삶은 부자의 미담이 아닙니다. 이는 모두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위한 행동입니다. 차별을 없애고, 약자를 보듬고, 받은 것을 나누는 것. 그것이 형평운동이고, 그것이 김장하의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다시 형평운동을 말하는 이유는, 지금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울처럼 평등한 사회, 바로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방향입니다.